3월에는 자주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너 낯선 동네에 미술심리상담을 배우러 다녔다. 도시의 북쪽과 남쪽을 연결하는 철교를 지날 적에 3월의 강은, 넓어서 오히려 어찌할 도리 없이 답답하고 황망했다. 황사와 스모그가 겹쳐 희뿌연 하늘, 강변에 늘어선 늘어진 버드나무, 청둥오리 한 마리 품지 않은 고요한 수면이 그 황망에 도를 더했다. 지하철은 어깨가 부딪힐 만큼 복잡했지만 사람간의 거리는 눈앞의 넓고 뿌연 강, 그 강에 떠있는 허공만큼이나 멀었다.
교실에서 강사와 나는 매번 부딪혔다. 나는, 문화 활동인 미술을 지나치게 개인의 심리와 연결시키려한다고 강사를 못마땅해 했고 강사는, 내가 미술심리와 예술을 혼동하는 것 같다고 불편해했다. 그날 수업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건물 내부를 걸으며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거였다. 숲에서 자주 하던 활동이라 속으로 에이 싱거워, 하며 복도로 나섰는데 그게 그렇게 싱겁지가 않았다. 숲이 곡선과 곡면, 열린 공간, 제멋대로 생겨먹은 울퉁불퉁한 표면으로 이루어진 투박한 세상이라면 손끝에 읽혀지는 빌딩 복도는 직선과 날카로운 모서리, 어디에 손을 대나 매끈하고 차가운 내장재, 막힌 벽으로 가득 찬 불안한 세상이었다. 날선 모서리가, 바람을 가득 안은 팽팽한 돛처럼 부풀어 올라 금시라도 여린 얼굴을 푹 베고 들어올 것만 같았다. 아일랜드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들이 떠올랐다. 잔혹하게 분해되어 방바닥을 구르는 인간 형상들과 그들이 내지르는 동굴 같은 절규들이. 그를 슬쩍 차용하기로 하고 나는 검은 도화지 가득 흰 색과 붉은색, 푸른색으로 북북 빗줄기를 그렸다. 가운데에는 빈 의자 하나를 놓았다. 제출하려다 무슨 이유에선지 빈 의자 위에 우산을 씌웠다. 강사는 학생들 그림을 모아 벽에 걸고 하나하나 평가를 하고는 마지막으로 찬찬히 내 그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음, 저는요 이 그림을 보면......여기까지 말하고 강사는 목이 멨다. 목이 메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우리를 바라보았다. 이 그림을 보면요...저는 마음이 아파요. 그렇게 말하고 강사는 기어이 눈물을 쏟았다. 나는 처음엔 놀라고 그리곤 곧 그만 덩달아 울어버리고 말았다. 이번엔 다투지 않았다.
그나마 우산이 있어 다행이예요. 강사는 다시 목이 메었는데 고개 돌린 창밖으로 노각나무가, 따뜻한 남쪽에 산다는 노각나무가 대도시 가로수로 심겨져서는 매연과 먼지와 바짝 마른 대기에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지금 산에 가면 귀룽나무 연한 잎이 푸르게 돋았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친 건 아직도 등을 보이고 서있는 강사의 얇고 여린 어깨에 눈길이 머물렀을 때였다. 무심히 산자락을 에돌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산언저리를 지나갈 적에 문득 잡아끄는 푸른빛이 있어 고개 돌리면 거기 먼 데, 먼 산골짝에 저 혼자 연하게 돋아난 귀룽나무 한 그루. 갓 지어 소복이 담은 성긴 밥 한 그릇 모양을 하고서.
밥 한 그릇 때문에 세상을 등진 세 여자가 이곳 강 건너에 살았다. 어미에 딸 둘. 딸 하나는 지병을 앓았고 다른 딸은 만화가가 꿈이었으나 일 년 벌이가 십 만원이 못되었다. 식당일을 하던 어미는 한 달 전 허리를 다쳐 그만두었다. 암을 앓던 아비는 십여 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살았을 적 예의바르고 조용했다는 세 모녀는 집 주인에게 줄 집세 70만원 그리고 죄송합니다, 라는 짧은 인사 한 마디로 그들이 한때 세상에 살았던 흔적을 대신했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지 왜 죄송하다는 건지 누구에게 죄송하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들이 세상을 떠난 2월말에는 아직 귀룽나무가 여린 잎을 틔우지 않았을 때였다.
그녀들이 세상에서 사라지자 며칠 후 도심 여기저기에 갑자기 플래카드들이 나부꼈다. 복지 도와드립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알려주세요. 언론은, 27조나 되는 긴급복지자금이 한 푼도 쓰이지 못한 채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고, 동사무소에 신청만 하면 되는데 참 안타깝다고, 이걸 알았으면 그녀들이 그렇게 세상을 뜨지는 않았을 거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죽은 세 모녀만 바보, 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들리기도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여튼 언론과 여론은 이번 세 모녀의 죽음이 제도와 행정의 문제라고 결론지었다. 그러게 참.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창고에는 27조가 쌓여있고 제도는 개선한다 했으니 살아있는 우리는 이제 다시 안심하면 되는데, 잊고 생업에 종사하면 되는데.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불안했다. 황사와 스모그로 뒤덮인 희뿌연 대기 속을 정처 없이 걷거나 차가운 침묵의 강 언저리를 서성이는 것처럼 답답하기만 했다. 세 모녀의 죽음이 단지 슬픔을 넘어 정체 모를 불안과 불편으로 다가오는 건 실은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믿어왔던 국민 대다수가 문득 그 보호가 작동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세 모녀의 허기와 고단, 죽음에서 우리가 본 것은 실은 우리 자신의 허기와 고단, 죽음이기도 하므로.
무려 27조를 품은 대단한 행정과 제도의 벽과 마주하는 일은 어쩐지 안대를 하고 강 건너 낯선 동네 낯선 건물 낯선 복도를 더듬는 일과 닮았다. 차고 반듯하고 매끈하고 날 섰다. 흔들리는 것이 없다. 들고 날 틈이 없다. 어디나 똑같다. 입구를 찾다 지친 우리는 무릎을 꺾고 두 팔을 늘어뜨리고 그 벽에 이마를 대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도 하는데 그러다 문득 뜨거운 눈물 한 줄기를 쏟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건 고통의 순간만은 아니다. 27조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도 아니다. 3월 어느 날 내 등 뒤에서 낯선 이가 나를 위해 목이 메는 순간이다. 강사의 눈물을 보기 전까지 나는 내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 마음이 몹시 쓸쓸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아니다, 실은 정말로 알지 못했던 건 아니고 알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창피하게도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앞에서 찔끔 울고야 나는 덜 쓸쓸해졌다. 강을 건너는 일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3월의 숲은 아직 봄이 더디다. 생강나무 노란꽃이며 연분홍 올괴불꽃이 더러 있지만 회색 줄기와 갈색 낙엽이 압도적인 무채색의 숲에서 그것들은 좀 생뚱맞다. 굳이 봄을 뒤지려면 잔뜩 허리를 구부리고 숲 바닥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는 편이 빠르다. 희뜩하니 푸른빛이 도는 현호색 잎, 노루만큼 순한 얼굴을 하고 고개를 내민 노루귀꽃, 꿩 우는 소리 들리지 않아도 마침맞게 피어나는 꿩의 바람꽃, 보실보실 솜털 돋은 애기똥풀에 봄은 낮게 숨어있다. 숲의 큰 키 나무들은 대개 5월은 되어야 잎을 틔운다. 누구는 큰 키 나무들과의 햇빛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은 키 나무며 풀들이 앞 다퉈 이른 봄에 잎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생각을 달리하면 그건 큰 키 나무들의 배려이기도 하다. 작은 것들, 바닥에 엎드린 것들을 위해 근질거리는 몸을 꾹꾹 눌러 참고 안간힘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산들바람 환장하게 부는 나른한 봄, 잎이며 꽃이며 얼른 내어 그저 쑥쑥 자라고만 싶지 않은 생명이 어디 있던가.
큰 키 나무인 귀룽나무는 이른 3월 저 혼자 숲에서 손톱만한 잎들을 틔워낸다. 그런데 틔워낸 그 잎들이란 것이 그저 여리고 순하고 성글어 숲바닥에 그늘을 드리워도 흔적이 없다. 무겁지가 않다. 잔가지는 휘늘어져 전체적으로 우듬지가 둥그스름한 것이 먼 데서 보면 소복한 밥 한 그릇이다. 그 밥 한 그릇의 형상으로 귀룽은 바닥에 피어난 낮은 것들에게 굳건한 연대와 지지를 약속하는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행정이라는 것도 그와 같아 복지를 약속하는 무심한 플래카드 대신 3월의 귀룽나무, 그 푸른 연대와 지지를 내부에 품었으면 좋겠다. 호모 사피엔스의 찬란한 봄이 ‘행정’의 벽 안에서 시작되고 피어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