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대면 톡, 하고 터지는 거요?
첫 번째 미션지를 받아 든 아이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리저리 계곡을 서성이며 손으로 이 풀 저 풀 만져보더니 갑자기 어! 하며 한 발짝 물러난다. 물봉선 씨앗이 얼굴 바로 앞에서 터지기 시작한 것. 총알이 발사되는 것 같단다. 무당거미 찾으러 가자고 해도 재밌다며 물봉선이란 물봉선은 죄다 툭툭 건드린다.
큰 바위 뒤에서 으리으리한 금빛 거미줄과 무당거미 발견. 대부분 거리를 두고 멈춰서서 눈으로만 바라보는데 몇몇 녀석이 손을 뻗어 무당거미를 떼어낸다. 1회차 숲 체험때 장님거미가 맨 팔에 기어가는 여린 느낌이 좋았다던 녀석들이다. 녀석들은 실젖을 살피기도 하고 요요처럼 거미를 아래로 늘어뜨려 장난도 치고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는 친구들에게 다가가 놀래키기도 하더니 다시 조심스럽게 거미줄에 올려놓는다. 첫 번째 숲체험에서는 뭔가를 만지는 것을 불편해하던 아이들이었다. 이번에는 좀 다르다. 검은다리실베짱이도 만져보고 좀사마귀도 쓰다듬는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조금 더 얼굴을 들이민다. 
칡덩굴 앞에서 칡을 잘라 누가 더 길게 비누거품을 부나 내기를 했다. 살집이 있는 녀석은 저를 닮아 통통한 거품을 만들고 마른 녀석은 또 저를 닮아 날씬한 거품을 만든다. 처음 숲에 올 때부터 심드렁해보이던 한 녀석이 얼추 50센티미터가 넘는 거품을 분다. 수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가수가 꿈이란다. 호흡조절을 잘하는가 보다. 아이들이 박수를 쳐주었다. 긴 거품보다도, 노래에 대한 녀석의 열정이 더 크게 자라나기를 바랐다.  
송곳처럼 뾰족한 귀고리를 한 녀석, 아까부터 손에 뭔가를 조심스럽게 들고 있다. 곤충 채집용으로 나누어준 투명 플라스틱 용기에 가을꽃 몇 송이, 노란 소태나무 잎사귀, 쇠무릎 씨앗을 담았다. 작품, 이란다. 검은색 트레이닝복에도 쇠무릎 씨앗이 잔뜩 붙었다. 쇠무릎은 녀석의 몸을 빌어 비로소 좁은 계곡을 나와 내년 봄, 온 숲을 누비게 될 것이다.
상수리나무 공터에서 루페로 나무에 난 협곡을 살피던 아이들, 상수리 우듬지가 만들어낸 하늘길을 보더니 알아서 카메라에 담는다. 인솔자가, 며칠 전 산행 때 찍었다는 검털파리 유충 동영상을 보여주며 찾아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나뭇가지 하나씩을 집어 들고 그 일대 낙엽을 뒤적인다. 그러다 놀라며 뒤로 화들짝. 낙엽 아래 털이 숭숭 난 애벌레 수 백 마리가 떼를 지어 우글거린 것. 지진이라도 난 것 같다. 세상 무서울 것 하나 없어 보이더니 검털파리 유충 앞에서는 좀 겁이 났던가보다. 물러났던 녀석들이 슬금슬금 다가간다. 그리고 알아서 루페에 담아 자세히 살핀다. 그러더니 또 찰칵.
계곡에 핀 노란 산국(山菊) 몇 송이를 따 따끈한 국화차를 마신 아이들, 표정이 영 아니다. 꽃차보다는 계곡 맞은편에서 풍겨오는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더 궁금한가보다. 아이들 중 누군가 계수나무 이파리 냄새, 란다. 나무다리를 건너 계수나무 공터로 갔다. 공놀이를 하기로 했다. 바닥에 떨어진 계수나무 이파리를 주워 양파망을 가득 채웠다. 금세 공 두 개 뚝딱.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공이다. 공은 녀석들의 힘찬 손길과 발길질 몇 번에 여지없이 뜯겨져나갔다. 쏟아진 이파리 안에 쵸콜릿 열 몇 개 그리고 놀란 집게벌레 한 마리.
비오톱(biotope)에서 이십여 분간 자유 촬영시간을 갖기로 했다. 친구 뒷모습, 움직이는 것, 구멍, 버섯, 하늘 등이 소재로 나왔다. 나무에 올라가 폼을 잡는 녀석도 있고 무조건 들이대는 녀석도 있다. 찍지는 않고 풀숲만 뒤지는 녀석, 은행알만 골라 밟는 녀석도 있다. 서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상대방을 찍으며 낄낄 웃는다. 햇살 쏟아지는 숲의 빈 터, 아이들이며 나무며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박주가리 씨앗을 날렸다. 10월의 파란 하늘 아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계수나무, 푸른 잣나무 사이로 흰 솜털을 단 박주가리 씨앗이 춤추듯 가볍게 날아간다. 감성(感性)하고는 담을 쌓은 것 같던 열여섯 사내아이들, 문득 햇살에 반짝이며 날아가는 박주가리 씨앗을 보고는 말이 없다. 표정들이 고요하다.
어떤 책에서 그랬다. 아이들의 영혼이 자라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도 공부하는 시간도 아니란다. 아이들의 영혼은,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는 시간에 자란단다. 고작 박주가리 씨앗 하나에 녀석들이 자라고 있다고 느낀 어른은 나뿐일까. 인솔자는 오늘 본 다양한 씨앗들을 되짚으며 아이들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특기를 키워나가기를 바란다며 숲 체험을 마무리했다. 누가 알겠는가. 십 년 혹은 이십 년 후 세상을 놀라게 할 영화감독이 녀석들 중에서 나올지. 숲도 아마 즐거웠을 것이다. 고운 녀석들이 놀러와 줘서.
'스마트폰에 숲을 담는 아이들' 3회차는 이수중학교(교장 임춘희) 컴퓨터실에서 진행되는데 편집 프로그램을 배워 각자 스마트폰에 담은 숲을 완성하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어떤 작품들이 나올지 궁금하다.
 
동영상 자료제공:허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