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전당 맞은 편 국수집에서 아는 여자와 밥을 먹었다. 엄마를 버스터미널까지 바래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밖은 비가 오다 눈이 오다를 반복했고 국수집 창밖 왕벚나무는 눈비에 젖어 늪처럼 검었다. 국수를 먹으며 여자가 말했다. 엊그제 지역아동센터에 수업을 갔는데 어떤 아이가 저한테 다가오더니 그러는 거예요. 저 선생님 알아요. 놀라서, 어머 어떻게 아니? 했더니 몇 달 전 자기네 학교에 제가 수업을 왔다는 거예요.
나는 문자도 하고 호루룩 면발도 건져먹고 창밖 풍경도 힐끔 보면서 건성으로 여자의 말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센터를 나서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걔가 나를 기억해줬다는 게 고맙고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만났는데 이렇게 헤어져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번쩍 드는 거예요. 이렇게 헤어지면 걔는 나중에 커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이렇게 헤어져도 되는 거라고 생각할 거 아녜요.
문자를 하다말고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평소 성품이 온화하고 순했다.
급히 수퍼를 찾았죠. 모르는 동네라 골목 골목 헤맸어요. 드디어 찾아서는 빵이랑 음료수랑 잔뜩 샀죠. 그리고 다시 센터로 달려가 걔를 불러냈어요. 걔 손을 꼭 잡고 말했죠. 이건 친구들이랑 나눠 먹고 그리고 이건, 이건 있지 꼭 너만 먹어.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여자가 국수를 먹다말고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얼결에 손을 잡힌 나는 여자의 온기가 어색해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비가 눈으로 변해 검은 벚나무에 하얗게 눈이 쌓이고 있었다.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잘 가고 있을까. 령 하나를 넘어야하는데 엄마를 태운 버스는 잘 달리고 있을까.
시골에 사는 엄마는 친척 결혼식 참석 겸 무릎 검사도 받을 겸 해서 며칠 전 서울에 왔다. 관절병원 두 군데를 돌고 다시 시골로 가는 길이었다. 어떤 의사는 수술 말고 길이 없다고 했고 어떤 의사는 통증이 없다면 좀 더 기다려보라고 했다. 수술 말고 길이 없다고 했을 때 동생은 터덕터덕 길을 걸으며 지나가듯 말했다. 엄마 미안해.
버스 출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허름한 대합실에서 엄마와 돌솥밥을 먹었다. 돌솥밥을 먹으며 엄마가 말했다. 예부터 사람을 옆에 두고 밥을 먹지는 말라고 했대이. 명심하래이. 옆에 사람이 있는데도 없는 척, 모르는 척 혼자 밥을 먹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거다. 사람을 옆에 두고 밥을 먹은 적이 인생에 없지는 않았다. 남편과 다투고 난 후가 그랬다. 혼자 먹으면서 속이 편하지는 않았다. 피가 되고 살이 되기보다는 불편하여 오히려 독이 됐다. 그리고 글쎄, 언제 또 옆에 사람을 두고 먹었더라. 그게 전부인 것도 같고 뒤져보면 더 나올 것도 같고. 나는 모르지만, 또 나와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알고 보면 결국 사람을 옆에 두고 혼자 밥을 먹은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뒤져보면, 나올 것이다.
엄마는 돌솥 바닥에 고스란히 누룽지를 남겼다. 나는 누룽지가 너무 좋은데 엄마는 왜 안먹느냐고 했더니 원래 누룽지를 싫어한단다. 엄마가 누룽지를 싫어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엄마도 싫어하는 뭔가가 있다는 걸 또 처음 알았다. 엄마 돌솥까지 내 앞으로 가져와 박박 누룽지를 긁고 있는데 아버지 전화. 오늘이 할머니 제사라 저녁때 엄마가 언제 도착할지를 묻고 있었다. 엄마가 말했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하면 당신이 먼저 지내요. 며느리가 무릎이 아파 검사받고 가느라 그리 되었노라고, 내년 1월 할아버지 제사에는 잘 갖추어 지내겠노라고 당신이 꼭 내 대신 잘 좀 말씀드려주소. 냉장고에 나물하고 베란다에 생선 말린 거하고.......
챙겨야 할 음식을 몇 번이나 일러주고 또, 이해해주십사 잘 전해달라고 거듭 부탁하고야 엄마는 전화를 끊었다. 대합실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엄마와 쇠무릎 얘기를 했다. 쇠무릎이라는 풀은 옛날부터 관절 아픈 데 약으로 써왔다. 콜라겐이 많은 닭발을 삶아먹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쇠비름이 얼마나 힘 센 풀인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아버지 밭 마가목 빨간 열매가 얼마나 고운지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벽에 걸린 커다란 스크린에서는 끊임없이 정치 얘기가 나왔다. 모 항공사 땅콩리턴 얘기가 나오고 비밀 문건 유출 얘기가 나왔다. 아직 어린 티가 나는 군인들은 샌드백을 메고 대합실을 왔다갔다했다. 부대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되었고 엄마는, 아픈 무릎이 남의 짐이라도 되는 양 무심히 끌어안고 느리게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린 후의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많이 가봐서 아는데 그 초라한 시골 대합실 창문 앞에도 여기처럼 왕벚나무가 있다. 령 넘어 거기가 눈이 오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아버지는, 만약 버스가 아홉시에 도착한다면 여덟시부터 대합실에 나와 엄마를 기다리고 있을 거였다. 그 왕벚나무처럼.
한 해가 저물어가는 2014년 12월 어느 오후, 예술의 전당 맞은편에서 밥을 먹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헤어질 적에는 그냥 헤어져선 안된다고 믿는 여자, 강사비를 몽땅 털어 먹을 것을 산 여자와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날이 저물고 한 해가 저문다. 한 해가 저무는데 맞은편 예술의 전당에서는 어떤 예술작품들이 상연되거나 전시되고 있을까. 나무를 닮은 사람들 그러니까 친정 엄마나 눈앞의 여자 같은 사람들에 대한 얘기도 거기 있을까.
창밖 검은 왕벚나무는 이 계절 아마 생장을 거의 멈추었을 것이다. 얼어붙은 땅, 얼어붙은 대기를 견디기 위해 스스로 먹을 것을 끊었을 것이다. 먹을 것을 끊은 나무 한 그루를 옆에 두고, 밥을 먹는다. 동토(凍土)의 겨울, 나무를 옆에 두고 먹는 밥은 한 숟갈 한 숟갈이 다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