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학원, 입시 준비로 바쁜 대한민국 고등학교 남학생들, 과연 숲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깊어가는 가을, 서울고 1학년 남학생들이 청계산 청계골에 모였다. 숲해설가 선생님께서 여기 왜 왔냐고 물으니 ‘환경보전’ 차원이란다. 말해놓고 저희도 쑥스러운지 씩 웃는다. 숲해설가 선생님은, ‘보전’은 단지 쓰레기 줍는 것과 같은 봉사활동만이 아니라 보전하고자 하는 대상이 소중한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며, 오늘 숲 활동을 통해 숲이 좋다는 느낌을 가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숲 체험을 시작했다.
청계골 입구에서 잣나무숲의 피톤치드 냄새를 깊이 들이마신 아이들은 곧 눈을 가리고 친구의 손가락 끝 하나에 의지해 숲 비탈을 걸었다. 겉으로는 웃어도 내심 돌부리에 걸리거나 무언가에 찔릴까 걱정하는 눈치. 얼마 후 눈가리개를 벗고 자신이 더듬어온 숲 비탈을 의미심장하게 돌아보는 아이들, 발바닥에 와 닿던 숲의 굴곡과 낙엽과 버섯 향을 되새기는 걸까. 혹은 손가락 끝에 남아있는 친구에 대한 믿음이라도.
비오톱(biotope)에 들어서 달콤한 계수나무 향을 깊이 마신 후 곧 조를 나눠 미션 수행. 벼메뚜기 잡아 고막 찍어오기, 잠자리 암컷과 수컷 세트로 데려오기 등.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아이들이 항의하자 숲해설가 선생님, 스마트폰은 그럴 때 써먹으란다.
처음엔 곤충이 싫다며 비오톱 가장자리서 서성이던 몇 몇 친구들, 연못에서 유령을 건졌다는 다른 아이들 함성에 곧 슬금슬금 다가온다. 유령은 다름 아닌 손가락만한 잠자리 유충. 영화 ‘에이리언’의 모델이라고 하자 다들 입 주변을 유심히 살핀다. 10분으로 한정했던 미션 타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곤충 채집 재미에 빠진 아이들 때문에 무한정 연기. 오랜만에 공부 압박에서 벗어나 천진하게 노는 아이들 모습에, 동행한 학부모들도 흐믓한 눈치다. 자주 저렇게 밖에 나와 놀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단다.
톱다리개미허리노린재, 썩덩나무노린재, 땅벌, 고추좀잠자리, 통거미, 네발나비, 청띠신선나비 등을 살핀 후 아이들은 연못에서 물을 떠 시약으로 연못의 COD(화학적 산소 요구량)를 측정. 시약이 반응하는 동안 말타기 놀이를 하기로 했다. 다들 할 줄 안다더니 막상 하려하자 쭈삣쭈삣. 하긴 머리 쓸 일이 너무 많은 요즘 아이들이 넓은 풀밭 혹은 운동장에서 이런 놀이를 할 기회가 있었을까. 아이들은 처음에는 행여 다칠세라 엉금엉금 기어오르듯 말에 타더니 시간이 흐르자 말을 무너뜨리기 위해 제법 거칠게 올라타기도 하고 또 말이 된 친구들은 상대편을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흔들어 보기도 한다. 몸과 몸을 부딪치며 노는 것, 몸과 몸을 밀착하며 노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유쾌하고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가을 숲에 울려 퍼지는 건강한 사내아이들의 웃음에 지나가던 등산객도 흐믓한 표정으로 힐끔힐끔. 숲도 간만에 행복했을 것이다.
은행나무 다리에서 유턴해 계곡을 따라 내려오는데 뱀허물쌍살벌집도 보이고 무당거미 알도 보인다. 알을 낳아 홀쭉해진 어미는 온 몸으로 알집을 감싼 채 툭 건드려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다시 처음 출발했을 때의 청계골 입구에 도착한 아이들, 숲을 뒤로 하고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면서 각자 어떤 느낌을 가졌을까. 낯설다? 징그럽다? 나쁘지 않다? 글쎄, 처음 숲해설가 선생님이 말한 대로 거창하게 무언가를 보호하기 보다는 동네 가까운 곳에 ‘나쁘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만 들어도 숲에게는 고마운 일일 듯했다. 내리 일주일간의 안개가 걷힌 시월의 청계산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이 날 숲 활동은 서초구 마을공동체 '아띠마당'이 진행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