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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사에서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7/10/20 [10:10]

처음 사나사(舍那寺), 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무슨 서역(西域)이라든가 사신, 아라비아, 천일야화 같은 먼 것들을 떠올렸다. 또는 동경 밝은 달 아래 밤새도록 노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신라 사내 처용도. 막상 도착한 사나사는 그러나 구불거리는 머리칼에 도깨비 같은 우락부락한 눈을 가진 서역의 사신도, 온갖 것들을 사고파는 페르시아 시장도, 가엾은 처용도 없이 고요했다. 산중턱 평지에 자리한 절은 마당이 특히 단아했고 그 마당에서 바라보는 앞산은 나지막하면서도 풍성했다. 절 옆으로 계곡이 맑고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계곡과 나란히 난 오솔길을 따라 걷기로 했다. 혼자 걸어도 가득 차는 오솔길은 여름 내 칡이니 환삼덩굴이니 무성하게 자라 그것들에 닿지 않으려면 최대한 옷자락을 잡아당겨 팽팽하게 몸에 붙이고, 때로 게처럼 옆으로 걸어야했다. 풀숲에서 갑자기 장수말벌 한 마리가 날아올라 사납게 윙윙거리는 바람에 후다닥 달려 숨을 고르던 중에 바로 앞에 흰 개 두 마리가 서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늘처럼 고요했다. 한 마리는 젖꼭지가 주렁주렁 늘어졌고 다른 한 마리는 그 옆에 호위하듯 서있는 것이 둘은 부부로 보였는데 표정이 다만, 막 긴한 얘기라도 나누고 오는 듯 수심이 가득했다. 예를 들어 밀린 월세라든가 막내 병원비라든가 하는 걱정거리에 대해, 그러나 마땅한 방도는 찾지 못하고 일단 혼자 둔 어린 것들을 서둘러 보러가는 중인 그런 표정이었다. 저희들이 먼저 나를 발견하고 멈춰서 있던 모양인데 길이 좁아 누구든 한 쪽은 비켜야 했다. 내가 양보하기로 하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계곡은 며칠 전 내린 비로 기슭까지 물이 찰랑하며, 콸콸 소리까지 내며 기세 좋게 흘렀다. 바위들 사이로는 달뿌리풀이 푸르고 풀끝에서는 붉은 꽃이 피처럼 싱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계곡 중간에 식탁만한 넓은 바위가 있어 잠깐 눕기로 했다. 그런데 바위 가장자리, 물살이 세게 부딪히며 들어왔다 돌아나가는 곳에 손가락 길이만큼 한 푸른 것. 뿌리째 물에 잠겼는데 풀인가 하고 보니 어린 버드나무였다. 뿌리며 줄기며 잎이며 선명하고 또록또록했다. 손으로 살짝 잡아당겨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버드나무가 아무리 물을 좋아한다 해도 손가락만한 어린 것에게 그 정도의 물살은 시련일 것이었다. 기특하면서 또, 그에 비하면 내 사는 모습은 부끄럽다고 여기던 중에 그 위 기슭 쪽으로 가을 햇살에 붉게 익어가는 자잘한 야광나무 열매들이 눈에 들어왔다. 계곡물이 튀어, 그 위에 또 초가을 햇살이 내려앉아 열매는 막 세수를 하고 난 듯 말갛고 고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모양새가 좀 이상했다. 열매가 달린 잔가지는 보통 허공 어디쯤에 있어야 하는데 여기서는 우듬지가 물살에 닿을 듯 옆으로 비스듬했다. 신발을 벗고 물에 들어가 열매가 달린 나무의 줄기를 살폈다. 그간 계곡물이 불었던 건지 혹은 점차 기슭이 깎이며 그리되었던 건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무는 밑동이 물에 잠겨 그 부근 줄기가 썩으며, 그러다 어느 순간 꺾여서는 계곡을 향해 누웠던가 보았다. 그러나 완전히 부러지지는 않고 일부는 아직 밑동과 연결되어 그로부터 미약하나마 양분을 공급받고 있었다. 그 부분마저 꺾이면 그나마 비스듬하던 그의 삶도 완전히 꺾여 물살을 따라 정처 없이 떠내려갈 것이었다. 아무래도 그의 삶은 올해 또는 길어야 다음해까지인 것으로 보였다.

주차장에서부터 30분은 걸어야 되는 긴 사나사 계곡, 그 기슭을 따라 양옆으로 야광나무가 유난히 많던 것이 떠올랐다. 물을 향해 누운 그의 몸에서 떠내려 온 열매들이 자라 그리 된 것일까. 위태로워 오히려 아름다운, 물에 누운 야광나무 한 그루에게 문득 묻고 싶어졌다.

너의 로망은 무엇이니.

대답 없는 야광나무와, 눈이 휙휙 돌아가도록 빠른 물살을 가만 바라보고 있자니 삶이 대체로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는 정신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말이다. 이렇게 무자비한 시간의 물살을 사람들은 그리고 다른 생명들은 어떻게 건너고 있을까. 각각 다를 것이다. 힘차게 물살에 올라타 순간순간을 즐기는 이도 있고 보약으로든 첨단의료장비로든 조금이라도 물살을 거슬러보고자 개기는 이도 있을 것이고 삶의 뒷자락에서 문득 명료해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도 있을 것이다. 혹은 개에게나 던져 주면 좋을 부질없는 로망 하나 가슴에 품고 그에 의지해 조심조심 물살을 타는 이도.

나의 로망은 빨강 JK Jeep Wrangler를 타고 산길을 달리는 것이다. 그렇게 달리다 산길이 끝나며 인가(人家)가 시작되는 지방 도로 어디쯤에서 선지국이나 해장국집을 발견하고 늦은 저녁을 먹는 것인데 그때, 저마다의 생각과 근심에 잠겨 묵묵히 뜨거운 국물을 뜨던 손님들 중 몇이 조금은 부러운 눈으로, 식당 마당에 들어서는 내 빨강 지프를 바라봐주는 것이다. 나는 일부러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운전석 문을 열고 나갈 생각인데 지금으로서는 가죽 쟈켓에 뱀가죽 부츠를 신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의 로망을 듣고 난 후 언니는 이렇게 충고해주었다.

이동식 계단을 준비하렴.

왜?

지프를 살 수 있을 때쯤이면 넌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있을 거잖아. 운전석에서 내릴 때 발받침으로 써야지.

▲     © 사진 장하윤

야광나무는 5월이면 나무 한가득 풍성한 흰 꽃을 피운다. 흰 꽃을 피우는 나무야 많지만 야광 꽃잎은 유독 희어 밤에 보면 그 일대가 빛나는 듯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단다. 그래서 한 번은 정말인가 확인하러 야광나무가 떼를 지어 자라는 태백산 꼭대기에 가보았는데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꼭대기는 여전히 기온이 낮고 바람이 강해 도착했을 때는 앙 다문 분홍빛 봉오리뿐이었다.

사나사는 용(龍)이 승천하는 문(門)이라는 뜻의 용문산(龍門山) 산자락에 들어서 있다. 길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사나사 계곡은 5월이면 온통 야광나무 흰 꽃으로 덮일 것이다. 꽃으로 채워진 계곡은 그러면 어쩌면 팝콘이 부풀어 오르는 듯도 하고 들썩이는 듯 꿈틀대는 듯 살아 숨 쉬는 것처럼도 보이리. 그러다 밤이 오면 꽃잎으로 지은, 막 승천하려는 한 마리 흰 용이 되어 신비한 푸른 바람을 일으키고 잠든 나무를 깨우고 산을 흔들고 몸에서는 천둥과 번개를 내어 마침내 저 먼 서역의 시간을, 저 먼 나라의 사신과 신라의 처용과 ‘노피곰 도ᄃᆞ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실 백제의 달을 이곳 사나사 고요한 마당에 내려놓으려나. 비스듬히 물에 누운 야광나무 한 그루의 로망은 그러므로 제 몸에서 무수히 열매를 내어 계곡을 따라 흘러, 다시 나무가 되고 꽃이 되어 봄밤 용문산 산자락 한 마리 아름다운 용으로 승천하는 것이려나.

다시 오솔길을 걸어 사나사로 돌아오는데 뒤뜰에, 갈 때는 보지 못했던 백일홍 밭. 지프보다 붉다. 성글게 늘어선 여린 꽃대는 빛과 바람에 어리어리 흔들리고, 노란 꽃밥 위로는 홀로그램을 얹은 듯 겹겹의 비늘을 번득이며 날개를 펄럭이는 검은 제비나비 한 마리.

 
▲     © 사진 장하윤
   

 


기사입력: 2017/10/20 [10:10]  최종편집: ⓒ 서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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