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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병장 풍경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8/06/25 [22:47]

아들이 입대를 하게 되었다. 입대날짜가 정해지고도 실감이 나지 않더니 입대 당일 아침, 기차에 오르고부터 심란해지기 시작한다. 아들은 창가에 앉고 나는 복도 쪽에 앉고 아비는 뒷자리에 앉아 어미와 아비가 번갈아가며 군 생활에 대한 이러저러한 조언과 당부를 하는데, 아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눈치다. 하기야 어미는 군 생활은 해본 적이 없고, 아비는 젊을 적 데모를 하다 감옥 가는 것으로 복무를 대신했으니 부모의 조언이라는 것이 딱히 쓸모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먼저 다녀온 친구나 선배들의 조언 그리고 인터넷에 올라온 후기들이 더 유용할 것. 기차 안을 둘러보니 여기저기 빡빡이들이 눈에 띈다. 그제야 내 아이가 머리를 깎지 않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간밤에도, 이발을 하고 가는 게 좋지 않겠냐고 조심스럽게 권했지만 아들은 당일 훈련소 부근에서 자르겠으니 더는 채근하지 말란다. 그 마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머리 자르는 것을 유별나게 싫어했다.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아들은 창밖만 볼 뿐 말이 없다. 저도 착잡한가 보다. 4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낯선 곳은 맑고 쾌청하던 서울과는 달리 폭우가 퍼붓는다. 역 앞은 또 그 일대가 허허벌판이다. 머리도 자르고 밥도 먹어야하는데 식당은커녕 시내버스도 보이지 않는다. 택시는 간간이 보일 뿐이고 그나마 갑작스런 폭우 탓에 택시 승강장에는 사람이 몰려 우리 차례를 기다리다가는 입대 시간에 늦을 것 같다. 일단 역을 벗어나기로 하고 아무 버스나 올라탔다. 시내라고 생각되어 내린 곳이 대규모 신축 아파트 단지. 그런데 막상 내려 보니 아직 입주도 안했고 상가도 없다. 다시 버스를 타려니 20분은 넘게 기다려야 하고 택시를 잡으려니 길거리는 텅텅 비었다. 이젠 밥이고 뭐고 일단 머리부터 잘라야한다. 마음이 급해지자 아이가 미워진다. 남들 다 이발하고 오던데 저가 무슨 테리우스라고 유난을 떨어 이런 난처한 상황을 만드는 건지 또, 아들 머리칼 자르는 것 하나 밀어붙이지 못하는 아비는 뭐하는 사람인지 등 화가 나기 시작하는데  마침 휑한 도로 맞은편에 택시 한 대. 앞뒤 안 가리고 도로로 뛰어들며 마구 팔을 흔들었다. 사정을 얘기하자 기사님은 자기 일처럼 이리저리 이면도로를 지나 미용실을 찾아준다. 낯선 도시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아들의 길고 구불한 머리카락이 속절없이 잘려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선운사 동백꽃이 어떻게 떨어지는가는 실제 보지 못했으나 적어도 내게는 아이의 머리칼이 동백꽃이 떨어지듯이 먹먹했다.


역에 내려서부터 동분서주하게 된 것이 저도 미안한지 길고 구불한 머리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것을 거울로 지켜보고도 아이는 투덜대는 기색은 없다. 오히려 어미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듯, 나쁘지 않은데! 하고 혼잣말을 한다. 아이의 목덜미에 묻은 머리카락들을 털어내지도 못하고 급히 미용실을 나와 또 급히, 기사님이 추천하는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다. 아들이 밥을 먹는 동안 아비는 손수건에 물을 묻혀 연실 아들의 목에 달라붙은 머리칼을 턴다. 아들은 세 숟가락을 뜨고는 그만 먹겠단다. 나는 부러 게걸스럽게 깍두기며 곰탕 국물이며 쑤셔 넣었다. 남기는 것이 아깝기도 했고, 아들 앞에서 약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시, 그때껏 식당 밖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고마운 택시를 타고 무사히 훈련소에 도착했다. 연병장 차광막 아래와 관중석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아들과 헤어질 시간은 이십분이 채 안 남았다. 무슨 당부를 더 해야 할지, 무슨 충고를 더 해야 할지 답답해하며 그저 연병장 가장자리만 서성이는데 힐긋 본 아들은 입술이 바짝 말라있다. 


곧 연병장에 집합하라는 안내방송이 울려 퍼지자 아들은 잠깐 우리를 돌아보고는, 썬크림과 여분의 안경과 우표가 든 에코백을 마치 그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차표라도 되는 듯 손아귀에 움켜쥐고 연병장을 향해 달려간다. 나는, 그런 아이를 붙잡으려고 함께 몇 걸음 뛰어나가다 멈춰 섰다. 그리고 울어버렸다. 아침에 서울에서 기차를 탈 적에 용산역과 서울역을 헷갈려 간신히 출발 5분 전에 기차에 오르는 등 하루 종일 긴장한 때문일까, 아이와 헤어질 것을 실은 염두에 두지 못했나보다. 하긴 염두에 두었던들 어느 부모가 제 품에서 멀어져가는 아이를 붙잡고 싶지 않았을까.


전국에서 온 훈련병들이 연병장에 모이자 넓어만 보이던 연병장은 금세 아이들로 가득 찬다. 어디에 내 아이가 있을까. 찾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덧없이 훑어본다.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자 더 서러워지며, 그러나 한편으로 안심도 된다. 적어도 혼자는 아닌 것이다. 입대식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연병장을 돌 적에 운 좋게도 아이의 얼굴을 발견했다. 약간 얼굴을 들고서, 마치 저 위 구름을 바라보는 것 같이 하고 걷는데 체념한 것도 같고 달관한 것도 같다. 아비가 먼저 아이를 알아보고 목청껏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듣지 못했나보다. 이번에는 부부가 함께 목청껏 이름을 부른다. 그제야 돌아보고는 가볍게 손을 흔든다. 됐다, 이제는 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연병장 한쪽에 쳐진 무거운 비닐 천막 안으로 아이들이 무슨 누우 떼처럼 빨려 들어가며 사라지게 되고도 한참을 연병장을 떠나지 못했다. 연병장을 떠나며 내가 한 일은 군대에서 나누어준 우편엽서에,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사랑한다고,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지지한다고 쓰는 일 뿐이었다.


다시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으로, 텅 빈 아이의 방에 누워 아이가 안고 자던 돌고래 인형을 힘주어 안았다. 그 밤,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아이도 낯선 곳에서 내내 자다깨다를 반복했을 것이다.


문득 우리 오빠가 떠올랐다. 오빠는 내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때 사고를 엄청 쳤다.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리기도 했고 동네 애들도 좀 팼다. 그래서 엄마가 자주 학교에 불려 다녔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오빠가 막 대문을 나서며, 야, 나 간다, 했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군대를 간단다. 놀라기는 했지만 속으로, 툭하면 심부름이나 시키는 사고뭉치 오빠가 군대를 간다니, 또 오빠 방을 내가 쓸 생각을 하니 기쁘기도 했다. 그래도 뭐랄까 좀 안된 마음이 들어 동네 신작로 버스정류장까지 오빠를 바래다주었다. 버스에 올라탄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집에서는 엄마 혼자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그 당시는 엄마가 왜 배웅을 가지 않는지 의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내내 속만 썩이다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보게 되면 그만 울며, 버스에 올라타는 자식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까 두려웠을까. 

▲     © 사진 장하윤

아들을 군에 보낸 다음날, 자는 둥 마는 둥 피곤한 상태로 아침 숲을 걸었다. 초여름에 든 숲은 이제 얼마 전까지도 선명하던 검은등뻐꾸기 소리는 듣기 어렵고, 텅 빈 터널을 지나는 것 같던 벙어리뻐꾸기 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떠났을까. 어린 것들은 많이 자랐을까. 산딸기나무 줄기에서는 큰허리노린재 한 쌍이 서로 꽁무니를 맞대고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옆 개암나무, 겹겹의 싱싱한 총포 안에서는 개암 열매가, 막 기기 시작한 어린 아기의 궁둥이처럼 삐죽 솟아오르고 있다. 앞으로 나뭇잎은 더 짙고 무성해지며 모든 힘을 자신들의 열매를 더 크고 튼튼하게 하는데 쏟을 것이다. 


흙먼지 이는 연병장을 떠날 적에 나는 간절히 기도했었다. 이 귀한 아이들, 제발 국가가 잘 보호해 달라고, 다치지 않고 모두 건강하게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가 해달라고. 날로 무성해지는 초여름 숲에서 새삼 나는 국가란, 어떤 독립된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랑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키워 마침내 품에서 떠나보내는 모든 개인들과 모든 생명들이 곧 국가라는, 그 개인들의 지순한 염원이 모여 절벽 위 빛나는 성채(城砦)로 우뚝 서게 된 것이 마침내 국가라는 그런 생각을 말이다. 


기사입력: 2018/06/25 [22:47]  최종편집: ⓒ 서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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