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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고 캄캄한 길
 
장수정 기자 기사입력  2018/07/25 [22:26]

▲     © 사진 김태남

우이령 입구 안내지도가 그려진 세움 간판 뒤에는 나방 네 마리가 붙어있다. 전체적으로 뽀얀 우윳빛에 날개와 몸통은 온통 털로 덮여있다. 날개에는 검고 얇은 줄이 물결처럼 이어지다 끊어진다. 매미나방이다. 날개를 접으면 실루엣이 매미를 닮아 그리 부른다지만 실은 매미하고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애벌레는 털이 북실북실하고 흉측해, 게다가 대량으로 발생하면 과수농가에 피해를 줘 대체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나방이다.

네 마리 모두 날개가 산(山) 모양으로 겹쳐져있고, 날개 아래에는 둥그렇고 길쭉한 알집 한 끝이 비죽 나와 있다. 알집은 전부 털로 지은 것이다. 어미의 몸에 난 것과 꼭 같다. 푹신푹신한 털로 알집을 지은 것은 알들이 겨울을 지나 내년 봄에나 깨어나기 때문이다. 겨울을 나려면 보온은 필수다. 어떤 책에는 매미나방이 알집을 지을 때 제 몸에서 털을 뽑아 그리 짓는다고도 하는데 가까이서 관찰한 지인에 따르면 뽑는다기보다는 배에서 절로 떨어지는 것 같단다. 제 스스로 뽑건 절로 떨어지는 것을 가져다 붙이건 알집의 털이 전적으로 어미의 몸에서 나온 것은 분명하다.

어미가 안내간판 뒷면에 알을 낳기 시작한 것은 6월 29일이다. 오늘이 7월 16일이니 보름이 훨씬 지났다. 대부분의 곤충은 사람이나 다른 포유류와 달리 알을 낳고 곧바로 숨이 끊어진다. 그렇다면 어미는 숨이 끊어진 채로 거의 보름 넘게 알집을 끌어안고 있는 셈이다. 죽음의 힘으로 산 것을 끌어안고 시간의 강물을 저어가는 중인 것이다. 그게 가능할까. 아니면 혹 아직 살아있는 건 아닐까. 나뭇가지로 슬쩍 그의 날개 끝을 건드린다. 미동도 없다. 더듬이도 건드려본다. 역시 미동이 없다. 보름은 사람의 시간으로는 얼마 안 되는 것일 수 있지만 나방에게는 또 다른 평생일 것이다.

알집을 끌어안은 매미나방 네 마리를 처연히 바라보던 중에 세움 간판 아래 흙바닥에 무언가 팔락이는 것이 눈에 띈다. 헛되이 간판 기둥을 타고 오르다 번번이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살아있는 매미나방 암컷이다. 날개 가장자리는 찢어졌고 더듬이는 한 쪽밖에 없다. 세움 간판 뒷면에는 알집이 네 개뿐이고 각각의 알집에는 이미 나방 네 마리가 붙어있으니 바닥에 뒹구는 것은 그것들 중 한 마리는 아니다. 손으로 그를 집어 종이컵 표면에 올려놓자 허겁지겁 여섯 개의 검은 다리로 가장자리를 움켜쥐고는 다급하게 종이컵 표면에 꽁무니를 가져다댄다. 알을 낳으려는 것이다. 부지런히 표면에 배 끝을 가져다댄다. 날개에 가려 그 안의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어렵다. 다만 컵 표면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내어 붙이는데 세움 간판 뒷면의 나방이들이 품고 있는 알집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가난한 털 몇 가닥이 전부다. 알도 함께 나오는 건지 어쩐지는 확인할 길 없다. 내가 보기에는 꼭 정신 줄을 놓아버린 자가 벽에 바른 제 똥 자국만 같다. 알집의 흔적만 간신히 남기고 다시 다른 곳으로 옮겨가 또 움찔움찔 알을 낳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연이어 묻힌 것도 알집이라기보다 찌꺼기에 가깝다. 그는 자신이 낳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번식과 생산에 대한 그의 집념은 지독해 반나절 이상 그렇게 종이컵 표면에서 끊임없이 꽁무니를 움찔거린다. 숨죽이고 바라보던 나는 처음에는 숙연해지다가, 처연해지다가, 마침내는 넌더리가 나버린다.

반나절이 지나고부터는 미동이 없다. 살짝 날개를 건드리자 가끔 파닥인다.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았나보다. 정신이 혼미해져가던 중에 그래도 습관처럼 다시 꽁무니를 움직여 알을 낳는 시늉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에서는 이제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는다. 털조차 묻어나지 않는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그는 알집이라고는 도저히 부를 수 없는 성긴 털 뭉치를 제 날개로 감싸고 마침내 움직임을 멈췄다. 마치 그 일이 그의 삶에서 가장 성스러운 일이라는 듯이. 그를 거기 버려둘 수가 없어 집으로 데리고 왔다. 머리맡에 두고는 잠이 들었다. 다음날 눈을 뜨자 마주한 그는 더는 종이컵 가장자리를 붙들고 있지 않다. 방바닥에 벌렁 나자빠졌다. 날개는 바닥에 대고 배는 위로 향한 채. 살아서는 그리 가볍던 날개가 죽어서는 가장 무거운 것이 되었다.

죽어서야 그의 내부가 보인다. 통통하던 배는 홀쭉하고, 여왕의 겨울외투 같던 털은 거의 빠져 한눈에도 듬성듬성하다. 맹렬하던 검은 다리 여섯은 애원하듯 가지런히 가슴께서 굳어있다. 날개 가장자리에는 시반처럼 검은 점이 촘촘히 찍혔다. 건조한 그의 몸은 눈으로 보기에도 가벼워 날개에서는 일없이 바스락, 소리가 날 것 같다. 나비목 독나방과 매미나방이었던 그의 주검 주변에는 낙엽처럼 그의 털 뭉치 몇 가닥이 굴러다니고 있다. 선풍기를 켜자 그의 털 뭉치가 이리 저리 날린다. 선풍기를 꺼버린다. 그의 모성을 지켜본 나로서는 그의 흔적 하나라도 함부로 대하고 싶지가 않아진다.

그를 아파트 화단에 놓아줄까 하다 다시 우이령에 데리고 갔다.  그를 처음 보았던 세움 간판 뒤로 돌아가자 알집을 감싸고 있던 나방 네 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을 살펴도 없다. 밤사이 그것들도 흙바닥에 떨어져 내렸던가보다. 아마 숲의 뭇 생명들이 재빨리 그것들의 몸을 거두어 나누었을 것이다. 이제 어미는 없이 튼실한 알집 네 개만 남은 간판 뒤편 사면은 노란 큰금계국 꽃과 보랏빛 익모초, 흰 누리장 꽃이 한창이다. 그 위로는 바삐 날개를 움직이며 부지런히 짝을 찾는 배추흰나비들. 공기를 가르는 열렬한 날갯짓 소리를 내 귀로는 들을 턱이 없어, 눈으로만 좇는 흰나비들 춤사위는 오히려 숲에 정적만 더한다. 헛되이 나비의 길을 좇으며 세움 간판 옆 개암나무를 향한다. 두툼한 총포에 싸인 어린 열매는 지난주와 비교해 도무지 자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갑갑증이 일어 손으로 일없이 열매를 까뒤집다가 개암나무 아래 그를 묻어주기로 한다. 낡은 그의 육신이 개암나무 아래 묻혀, 혹부리영감이 딱, 하고 개암 깨무는 소리, 혼비백산하여 도깨비들이 도망가는 소리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우이령 초입을 벗어나서는 습관적으로 오늘 저녁 먹을거리를 헤아린다. 일단 애호박을 사야한다. 따끈하게 전을 부칠 것이다. 분이 나는 햇감자도 사고 찰옥수수도 살 것이다. 된장찌개에 넣을 치마양지도 반 근 사야한다. 다 아들이 좋아하는 것들이다. 감자와 옥수수는 미리 쪄놓고 된장찌개도 간은 일단 맞춰놓고 호박전은 밥 먹기 바로 전에 부쳐야겠다고 일의 순서를 헤아리다보니 이런! 아들은 얼마 전 군대에 갔다. 먹일 방법이 없다. 입대한 지 두 달이 되어 가도록 아직도 습관처럼 아들이 좋아하는 것만 사고 있다. 아마도 내 마음은 육신이 이 세상에 안녕을 고하기 전까지도, 혹은 안녕을 고한 후에도 변함없이 아들이 좋아하는 감자를 찌고 옥수수를 찌고 호박전을 부치려는가보다. 어떻게 하면 가장 따끈한 상태로 호박전을 먹일까를 고민하며.

연일 기록을 갈아치우는 폭염에도, 고요와 정적으로 오직 열매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는 한여름 숲은 어쩐지 무섭기도 하다.

 

‘고요하고 캄캄한 길’- 김사인 ‘풍경의 깊이2’ 중에서

 


기사입력: 2018/07/25 [22:26]  최종편집: ⓒ 서초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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